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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시가 있는 세상읽기] 겨울 숲과 밤꽃

겨울 숲과 밤꽃

늦겨울 눈 오는 날

날은 푸근하고 눈은 부드러워

새살인 듯 덮인 숲 속으로

남녀 발자국 한 쌍이 올라가더니

골짜기에 온통 입김을 풀어놓으며

밤나무에 기대 그짓을 하는 바람에

예년보다 빨리 온 올봄 그 밤나무는

여러 날 피울 꽃을 얼떨결에

한나절에 다 피워놓고 서 있었습니다

-정현종 작「좋은 풍경」중


「좋은 풍경」(정현종) 덕에 눈 내리는 숲의 정경이 한결 따뜻하다. 누군가의 ‘발자국’과 ‘입김’까지 선명하다. 슬며시 웃음도 물게 한다. ‘그짓’이라니, 그것도 겨울 ‘밤나무에 기대’! 참 절묘한 표현이다. ‘키스’(그 이상인가? 이런 상상 유발도 시의 폭을 넓힌다)라고 명징하게 썼다면 심심할 뻔했다.

혹 갸웃거리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어를 시어로 쓴 지 이미 오래고, 욕설도 더러 이용하는 요즘 시에서 이런 표현쯤은 예사다. 말이란 문맥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내는 데다 실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짓’은 오히려 돌려 말하기로 효과를 높인 경우다. “예년보다 빨리 온 봄”이나 밤나무가 “여러 날 피울 꽃을 얼떨결에/한나절에 다 피워놓고 서 있”는 게 다 ‘그짓’ 때문이라니, 생명의 소문이 훈훈하고 유머러스하다.

이 시가 별 기교 없이 그려낸 생명의 고리는 아름답다. 겨울 숲의 ‘그짓’을 봄날의 ‘꽃’으로 둥글게 이어놓기 때문이다. ‘눈’과 ‘입김’과 ‘밤꽃’의 비슷한 색깔이며 이미지, 게다가 세간에서 ‘밤꽃’에 입혀온 연상을 슬그머니 생명에 연결한 솜씨는 무릎을 치게 한다. 정현종 시인은 이렇듯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튀는 상상으로 재미있게 혹은 강렬하게 전한다. 생태 파괴나 생명의 위중을 앞 다퉈 부각한 ‘생태시’는 90년대부터 크게 늘었는데, 그 중에도 독특한 기지와 유머를 발휘하며 온 생명의 길을 노래하는 것이다.

생명이나 자연을 노래한 시는 예전에도 많았다. 자연과의 조화가 우리의 세계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파괴의 실상을 고발하고 각성과 실천을 촉구하는 시는 이즈음의 것이다. 짧은 시 한편으로 세상이 바뀔까마는, 시인들은 세상의 문제를 더 깊이 보고 느끼고 적는다. 효율성만 쳐주는 시대에도 여전히 비효율의 발언으로 세상의 이면을 일깨우는 것이다.

녹색은 이제 전 세계의 화두다. 아니 화두 이상의 먹고 살 길이다. 인류의 미래가 녹색의 실현 여부에 달렸다는 세계 곳곳의 외침이 자못 비장하다. 하지만 작년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보았듯, 실천은 만만치 않다. 각국의 이해득실 앞에서 큰 합의나 구체적 실천들이 자꾸 밀린다. 그래서 더욱 미래를 보고 이상을 노래하는 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좋은 풍경」은 이발소 그림이 아니다. 쉽고 재미있고 다스한데 속뜻 또한 깊다. 꼭 이때쯤의 눈 오는 숲을 무심한 척 속되지 않게 그린 ‘그짓’이 아름다워 풍경이 은근히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두 쌍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올해 밤나무가 유독 풍성하게 저를 꽃피우면 끄덕이며 오래 바라보리라. 아하, 그랬었구나.

정수자/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