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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通

역사가 된 기업 이야기 | ⑥영국 브롬톤

자전거업계의 롤스로이스로 유명
1976년 설립, 영국서만 생산하는 접이식 미니벨로 전 세계 40개국 수출

 




지난 4월, 서울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는 이색적인 자전거 경기가 열렸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은 사람들이 한 손에는 자전거를 든 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이 날 열린 자전거 대회는 단순히 속도를 겨루는 게 아니다. 옷깃이 있는 셔츠와 자켓, 넥타이라는 도심 속 일상의 옷을 갖춰 입고 빨리 달리는 것이 목표. 정장이라는 드레스코드가 대회의 중요한 참가 자격 중 하나인 이 이색적인 자전거 대회는 자전거업계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영국의 브랜드 ‘브롬톤 (Brompton)’이 개최한 ‘브롬톤 코리아 챔피언십’이다.

영국여왕도 인정한 명품자전거
브롬톤은 케임브리지 공대 출신의 영국인 엔지니어 앤드류 리치(Ritchie)가 1976년 설립한 폴딩형(접이식) 미니벨로 자전거 회사다. 16인치 폴딩형 자전거 중 접었을 때 가장 작은 부피를 자랑하는 이 자전거는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도시 중 하나인 영국의 수도 런던. 이곳에서 생활하던 브롬톤의 창시자 앤드류 리치는 미니벨로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처음으로 접히는 자전거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냈다.
당시 리치는 꽉 막힌 거리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가 자전거보다도 느리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런 불만은 결국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접어서 자동차로 갈아 탈 수 있고, 거꾸로 버스나 전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타고 가다가 자전거를 펴서 타고 달릴 수 있는 ‘접이식 자전거’에 대한 아이디어로 이어지게 됐다고. 자신의 아이디어 같은 자전거가 나온다면 무척 편리할 것이란 생각에 리치는 1975년 개발을 시작했으나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편리한 자전거를 개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6년의 세월이 흐른 1981년이 돼서야 최초의 브롬톤이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브롬톤은 계속 개량에 개량을 거듭, 1988년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브롬톤의 디자인은 20년이나 전에 완성된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브롬톤만큼 완벽하게 잘 접히는 자전거는 없어요. 클래식한 영국풍의 스타일과 편의성을 고려한 완벽한 설계의 만남, 이것이 브롬톤의 매력입니다.”
브롬톤 자전거는 2단계의 단순한 과정을 통해 10~20초 만에 접힌다. 접힌 상태의 자전거는 지하철역 코인 로커에도 들어갈 정도로 작은 부피를 자랑한다. 이는 수 십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 자전거 마니아들이 브롬톰 자전거에 열광하는 이유가 됐다. 폴딩형 자전거로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직사각형 형태로 접히는 브롬톤은 지난 2010년 영국 여왕이 수여하는 기술 혁신 및 수출 공로상을 수상했다.

고유부품 직접 개발·생산
‘고정프레임 자전거의 고성능에 접이식 자전거의 편리함을 결합한 제품.’
폴딩형 자전거 영역의 선구적인 브랜드인 브롬톤은 폴딩 바이크 유저들의 궁극의 꿈이기도 하다. 특히 이 회사는 오늘날 자전거 산업에서 상식이 된 것들을 하나도 따르지 않고도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오롯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혁신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브롬톤은 런던 본사 옆에 붙은 공장에서 모든 제품을 만들고, 그 가운데 75%를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40개국에 수출한다.
브롬톤 자전거는 대략 1,200여개의 부품으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서 4분의 3이 넘는 부품이 경쟁사의 자전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브롬톤만의 고유 부품이다. 특히 부품의 70%는 영국산이며, 나머지 부품도 대부분 유럽산을 고집한다.
이는 전 세계 고급 자전거 업체 대부분이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브랜드는 달라도 공용 부품을 폭넓게 쓰는 것과 정반대다. 원가 절감을 위해 업계에서 통용되는 범용 부품을 써야 한다는 글로벌 제조업의 기본 논리는 이들과 전혀 상관없는 이론인 셈이다.
로스 호킨스 판매 책임자는 전용 부품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범용 부품을 쓰면 브롬톤처럼 접었을 때에 직사각형에 가깝게 완벽하게 접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브롬톤이 자사 접이식 자전거에 최적화된 부품을 직접 수공업으로 생산하면서 경쟁자들은 이 같은 정밀하고 섬세한 부품을 고품질로 만들어낼 설비를 투자해 따라온다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물론 이에 따른 위험 요인도 존재한다. 브롬톤이 공급받는 1,000여개의 전용 부품 가운데 한 곳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 생산이 중단되는 리스크가 항상 존재한다.
브롬톤은 본격 생산을 시작한 1988년 이후 매년 매출이 늘었는데 2002년 단 한 해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당시 브롬톤에 허브기어(뒷바퀴 축에 내장된 변속기)를 단독 공급해 주던 영국 자전거 부품사 스터미아처사가 파산하면서 부품 공급망이 몇 달간 끊어져 버렸다.
이외에도 브롬톤 자전거는 상당히 독창적인 프레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프레임은 내구력과 견고함을 위한 고장력 합금을 사용한다. 또 라이더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구동력으로 전달하기 위한 고유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풀사이즈의 휠베이스(앞뒤 바퀴의 거리)는 속도를 낼 때 안정감 있는 주행을 가능케 한다.
자전거는 보통 10~20초 내에 탑재된 바퀴보다 조금 큰 사이즈로 접을 수 있다. 접었을 때 형태는 라이트와 케이블 등 작동부위를 보호하고, 기어와 체인이 옷을 더럽히는 것을 방지하며, 작은 롤러로 이동을 편리하게 하고 있다.



단일 제품으로 승부수
브롬톤은 각 지역 소비자 취향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현지화 전략’도 철저히 무시한다. 브롬톤은 지난 30년간 오직 한 가지 제품만 만들어 유럽에도 팔고 미주에도 팔고 아시아에도 판다. 수십 가지 제품을 갖추고 그것도 모자라 매년 연식 변경 모델까지 내놓는 경쟁사들과 달리, 브롬톤은 지난 30년간 오직 한 가지, 그것도 단일 사이즈 제품만 생산해 왔다. 즉, 1970년대 말 창업자 리치가 처음 개발한 원형이나 2013년형 모델이나 기본 형태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 회사의 윌 버틀러 애덤스(Butler Adams) CEO는 “다른 업체들은 수십 가지 다른 형태를 만들기 때문에 설계나 생산의 변경이 잦고, 이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 등 더 저렴한 생산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브롬톤은 극단적인 단순화를 통해 얻어지는 비용 절감이나 품질 향상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관리해야 할 부품이 적기 때문에 부품 재고 관리에 드는 비용도 아주 적다. 따라서 런던에서 100%로 생산해 수출하면서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대신, 소비자에게 한 가지 모델만 제공하는 단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핸들 형태를 4가지 형태로 제공한다든지, 자전거에 들어가는 각종 액세서리를 바꾸는 식으로 수천 가지의 다른 조합을 만들어 소비자 취향에 맞춰 나갔다.
이러한 브롬톤의 전략에 대해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에르메스가 한 땀 한 땀 프랑스 장인의 손길로 바느질한 최고의 가죽 제품이라는 콘셉트로 범용 제품과 완전히 차별화하듯 브롬톤은 자신들 제품을 일반 자전거와 완벽하게 차별화함으로써 런던에서 비싸게 만들더라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다각화 글로벌화 전략, 즉 전 세계에 흩어진 니즈에 맞추는 게 아니라 가장 핵심이 되는 아주 좁은 시장, 좁은 고객만 확실하게 차별화된 제품으로 집중 공략하면,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저절로 고객을 끌어온다는 논리다.
회사가 직접 전 세계에 나가 영업 활동을 할 필요도 없이, 자신들이 공략하는 한정된 고객의 힘, 즉 ‘입소문’에 의해 자연스럽게 판매가 늘어난다는 게 브롬톤의 영업 비결이다. 브롬톤의 매출은 본격 생산을 시작한 1988년 이후 줄곧 성장세다. 지난 5년간 연평균 성장률 20%, 영업이익률 10%를 유지하고 있다. 또 브롬톤 직원 190여명은 1주일에 나흘만 일하고도 런던 서부 지역의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다.

영국에서 직접 제조
브롬톤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국에서 직접 생산, 전 세계로 수출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브롬톤은 그들의 자전거를 ‘직접 제조하는 것’만이 품질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며 제3자에게 위탁해 생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브롬톤이 말하는 직접생산이란 다른 곳에서 생산한 부품들을 단순히 조립만 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프레임 제작과 중요한 엔지니어링의 대부분을 웨스트 런던의 공장에서 직접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전거는 단순 조립품이기 때문에 설계·디자인은 선진국 업체가 하더라도 생산은 임금이 싼 중국·동남아에서 해야 한다는 업계 상식을 완전히 깬 것이다.
브롬톤은 1990년대 대만에서 현지 기업과 합작해서 브롬톤 자전거를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업체를 통해 제조 노하우가 유출되고 대만에서 저급한 품질의 카피 모델이 나오면서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결국 합작 관계를 청산하고 유럽에서 이들이 판매를 못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무려 10년을 끈 이 골치 아픈 싸움은 브롬톤사에 큰 교훈을 남겼다.
기업의 기술력을 지키기 위해 브롬톤은 특허도 내지 않는다. 특허를 내기 위해서는 특정 기술들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 쉽게 카피 모델이 나올 수 있고, 특허 방어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수 있다는 게 회사의 주장이다.
대신에 브롬톤은 매년 ‘브롬톤 월드 챔피언십’을 개최해 전 세계 마니아들과 새로운 고객 등 실 사용자들에게 브롬톤을 자연스럽게 홍보한다.
접힌 모습마저 아름다워 공간에 혼자 서 있는 모습만 봐도 브롬톤 임을 알아챌 수 있는 유니크한 디자인과 미니벨로라면 취약할 수 있는 강력한 주행 성능까지 겸비하고 있는 브롬톤. 도심 속 생활 자전거로 최적의 성능을 자랑하는 브롬톤은 이를 전 세계에 알리는 방법으로 정장드레스 코드가 있는 도심 속 이색 자전거 대회 개최라는 이벤트를 선택했다.
‘브롬톤 월드 챔피언십’은 정장을 입고 트랙을 달리는 속도 경주 외에도 자전거 빨리 접기, 베스트 드레스 상 등 브롬톤 매니아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들로 세분화해 진행된다.
두 단계로 마술처럼 접히는 편리성,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부피를 자랑하는 휴대성, 뛰어난 주행성능, 유니크한 디자인,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색 자전거 대회 등 남다른 기술력과 상식을 깨는 경영 방식으로 폴딩형 자전거업계의 선도기업이 된 브롬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브롬톤은 폴딩형 미니벨로 자전거의 명품인 동시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꿈의 자전거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영 기자 l misaga@gfeo.or.kr